본문: 시편 88 편 [고라자손의 시, 곧 에스라인 헤만의 마스길, 인도자를 따라 마할랏 르안놋에 맞춘 노래]
[말씀묵상]
오늘 시편을 색깔로 표현하면 모든 시편 중에서 가장 어두운 색깔로 표현될 수 있을 듯 합니다. 오늘 시편의 제목에서 '마할랏 르안놋'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마할랏'과 '르안놋'이라는 두 단어 모두 매치되지 않지만 '노래'와 '몹시 아픈 병'과 연관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오늘 시편이 병으로 몹시 앓고 있는 시인과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굳이 시편의 제목을 보지 않더라도 오늘 시편을 묵상하다보면 그 어두움의 무게가 상당히 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시인은 병으로 인해 혹은 다른 재난으로 인해 이제는 모든 이들이 자신을 피하고 가증하게 여기는 현실로 인해 몹시 지쳐 힘이 없음을 하나님께 말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자신의 영혼에 재난이 가득하며 주의 진노가 자신의 삶에 넘친다고 말합니다. '재난'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악함', '나쁨'이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병마에다 악한 일과 재난이 가득한 삶을 살다가 이제 죽음의 문턱에 있는 한 사람을 떠올리며 그런 누군가의 기도를 읽거나 듣는다는 것 그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게다가 시인은 스올, 죽음의 공간을 표현할 때, 아무 것도 알 수 없는,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곳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인이 죽음 이후에 아무 것도 없음을 말하거나 그렇게 믿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시편을 다시 묵상하다보면 이 모든 고백은 하나님께 간절히 주야로 부르짖는 기도라는 것이 분명합니다. 기도할 힘이 없고 희망이 없어 보이지만, 마지막 남은 힘을 내서 손을 들고 있으며 (9절) 죽음 너머에는 마치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간절히 하나님께 구하는 것입니다. 오늘 시편의 마지막절 (18절) 에서 "주는... 내가 아는 자를 흑암에 두셨나이다"라는 부분을 여러 영어 성경에서는 "어두움이 유일하게 나의 친구이다, 혹은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언뜻보면 오늘 무거운 시편을 마무리하는 가장 상징적인 단어는 '어두움' 자체라고 지나치기 쉽습니다. 하지만 오늘 시인이 인생의 마지막 순간과 같은 어두움 속에서 유일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어두움이 유일하게 친구라해도 시인이 오늘 부르는 분은 여호와 내 구원의 하나님이었습니다 (1절). 오늘 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짙은 어둠만이 곁에 있는 듯해도 아무도 없는 것 같은 참혹한 고독만 나를 지켜보는 듯 해도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음을, 희망이 있음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마스길', 즉 교훈시입니다. 오늘 시편은 전통적으로 주로 성금요일에 성도들이 읽었다고 합니다.
오늘 이 시편을 묵상하실 때, 밝은 낮에도 또한 눈 앞이 캄캄한 밤에도 늘 기도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기도제목]
- 주님, 어둠만이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은 절망과 외로움이 밀려오더라도 기도할 수 있는 힘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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