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시편 98편 [시]
[말씀묵상]
왕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6절). 오늘 시편에서 시인이 주님을 찬양하는 이유는 바로 구원 (혹은 승리)를 베푸심 때문입니다 (1-2절).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주시며, 그 구원을 알게 하시며, 땅 끝까지 이르는 모든 것이 그 구원을 보게 하셨다고 선포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오늘 시편 2-3절에 나와있는 '구원' (예수아) 이라고 하는 단어는 바로 예수님의 히브리어형과 같습니다. 굳이 단어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오늘 시편에서 하나님의 구원과 승리는 몇 가지 점에서 우리 예수님의 오심과 십자가의 죽으심, 부활, 다시오심을 통해 묵상할 수 있습니다. 먼저 시인은 하나님께서 기이한 일을 행하셨다고 선포합니다 (1절). 하나님께서 행하신 수 많은 기이한 일들 가운데 주님의 십자가의 사건만큼 우리 인류에게 더 기이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다음으로 시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집에 베푸신 인자와 성실을 기억하셨기 때문에 땅 끝에 이르는 모든 것이 구원을 보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3절).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은 지난 시편들에서 하나님의 실패하지 않는 언약적 사랑, 아멜렉 전투에서 모세의 손이 들려있음과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변함없이 붙들어 주심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사도 요한은 말씀이 육신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주님에 대하여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고 하였으며 (요 1:14) 그 은혜와 진리가 주님으로 부터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라과 기록하였습니다 (요 1:16). 요한이 주님께 대해 말씀한 그 은혜와 진리가 바로 오늘 시편의 시인이 선포한 하나님의 인자와 성실하심입니다.
오늘 시의 마지막 절 (9절)은 주님의 심판에 대해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심판에 대한 메세지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구원으로 인하여 온 땅이 기뻐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장면 (3절) 보다 뒤에 오는 것은 왜 일까요? 우리 생각에 둘의 순서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먼저 하나님께서 세계를 공평으로 심판하셔야만 온 땅이 진정으로 기뻐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것이 당연한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그것이 우리 믿는 자들의 신앙의 비밀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시인이 선포한 심판은 단순 미래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 모두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이신 주님께서 오셔서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시고 또 그 구원하심을 완성하실 것과 같습니다. 현재와 미래가 같이 있는 것은 모순처럼 보이지만 성도들에게 미래는 생생한 현재와 같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인자와 성실하심을 기억하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마치 오늘 시인이 땅 끝에 이르는 모든 것이 구원을 이미 보았다고 함과 같습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 신앙인은 보이는 것에 연연하는 옛 노래만 하지 않습니다. 성도들이 할 일은 바로 하나님께서 하신 일과 하실 일을 모두 선포하는 새 노래입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찬송가 "기쁘다 구주오셨네!" 이 찬양의 가사는 오늘 시편에서 비롯된 찬양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새 일을 행하시고 탄식의 노래를 거두어가시는 하나님을 소리 높이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기도제목]
- 하나님 우리의 상황과 모습과 상관없이 믿음으로 회복의 새노래, 승리의 새노래로 주님께 올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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