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시편 101편 [다윗의 시]
[말씀묵상]
오늘 시편은 다윗의 시편입니다. 시인은 완전의 길에 주목하며 완전한 마음으로 행할 것을 선포합니다 (2절). 다윗은 다른 시편에서도 완전함을 시편에 노래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여 죄악의 길에서 자신을 지키며 (시 18:23) 완전하신 하나님의 힘이 자신을 완전하게 하셨다고 적었습니다 (18:32). 다른 시에서 완전함에 행하였고 (시 26:1) 또 완전함에 행하겠다고 선포했습니다 (시 26:11). 우리는 완전이라는 단어가 우리 인간에게 과연 합당한 단어인지 시인이 너무 과분한 단어를 사용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분명 다윗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았지만 결코 삶 전체가 완전하였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완전'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 (타밈) 는 많은 경우에 동물 제사에서 제물에 흠이 없다 (혹은 온전한, 순결한) 라는 뜻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용하는 개역개정 외에 여러 번역본은 시편 18장의 '완전'이라는 단어 대신에 흠 없는 (blameless) 이라는 말로 번역하였습니다. 어찌보면 '흠 없는'이라는 단어가 사람과 더 가깝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사실 이 단어의 뜻과 상관없이 타밈 (완전한, 흠 없는)은 우리의 도착지로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었습니다. 신명기에서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완전' (타밈) 하라"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신 18:13). 이런 면에서 다윗이 완전에 주목하는 것은 결코 주제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러 시편에서 다윗은 수많은 비방과 공격으로 죄인 중의 죄인으로 취급당하며 도망자로 반역자로 취급되어 누구든지 다윗에게 편애를 봐주는 사람은 끔찍한 일을 당할 수 있는 상황 속에서 나온 고백들이었습니다. 시인이 말한 완전함, 흠 없음은 수 많은 불완전과 흠 많은 상황 속에서 나온 것들이었습니다. 더욱이 오늘 시에서 완전함은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악함을 멀리하며 하나님의 인자와 정의를 따라가는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그것은 이웃을 헐뜯고 교만하며 허탄한 행위 (혹은 배교: 3절) 를 하는 이들의 자리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오늘 시편은 모두 ~~을 하겠다는 것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즉 완전함은 부르심이며 결단입니다. 완전함은 하나님의 성품이며 또한 우리가 날마다 닮아가기를 구해야하는 여정으로 주님의 백성에게 허락된 길입니다. 완전의 길은 결코 누군가의 길이 아니라 오늘 흠 많고 죄 많은 세상에서 우리 모든 성도가 순간 순간 마주하는 상황입니다. 오늘 시편의 시인처럼 오늘 완전한 길에 주목하시고 "주께서 어느 때나 네게 임하시겠나이까 (2절)"라며 주님 바라보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기도제목]
- 미움과 다툼의 길을 멀리하게 하시고 원망의 길을 멀리하게 하소서. 주께서 끊어버릴 길, 멸망의 길에 서지 않게 하시고 완전한 길로 생명의 길로 날마다 인도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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