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시편 116편
[말씀묵상]
계속해서 유대인들이 전통적으로 유월절 식사 이후에 낭독한다고 하는 시편들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 116편의 시인은 죽음의 위기에 구원받은 것을 기뻐하며 그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제를 서원하며 나아가고 있습니다. 시인은 스올의 고통이 그에게 '이르고' 환난과 슬픔이 그를 '만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3절). 여기서 '이르고'와 '만났고'라고 하는 이 두 단어들은 원래 같은 단어로 '적극적으로 찾아낸다'란 뜻으로 다른 구절에서 종종 번역되고 있습니다. 시인이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도저히 떨쳐낼 수 없는 운명처럼 죽음의 고통이 그를 놓지 않고 있었습니다. 사망의 줄이 그를 둘러싸 그를 옭아매어 결박했기 때문에 도저히 거기로부터 빠져나올 수 없었습니다 (3절). 시인은 고통 중에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며 간구하였고 (4절), 죽음의 문턱에 있었지만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10절). 마침내 하나님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셨습니다 (6절). 시인은 주님께서 그의 눈을 눈물에서 건지셨다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8절). 하나님께서는 그의 결박을 푸셨습니다 (16절). 오늘 시편의 시작은 이런 감격 속에서 나온 시인의 고백으로 시작합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1절). 주님은 내게 귀 기울이셨습니다 (2절).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고통 속에 부르짖을 때에 귀 기울이시고 그들을 결박에서 풀어주셨던 주님께서 시인에게도 오셔서 눈물 속에 잠긴 그의 눈을 닦아주셨습니다.
시인은 그 감격에서 그치지 않고 사랑하는 주님의 그 큰 은혜를 어떻게 갚을 수 있을까 말하며 (12절) 이제 그가 서원한 감사제를 주님 앞에 드리겠다고 선포하며 구원의 잔을 높이 듭니다 (13-14절). 잔과 제사의 연결점은 부어짐입니다. 구원하신 하나님께 그는 그의 삶을 감사함으로 드려지기를 원하며 주님을 찬양하며 시를 마무리합니다.
끝으로 전체 시편에 어울리지는 않아보지만 시인은 경건한 자의 죽음이 하나님께 의미하는 바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15절). 그것은 무의함이 아니라 주님께 귀중한 것입니다. 시인에게 구원의 잔은 무엇이었을까 다시 생각하게 하는 부분입니다. 시인은 죽음의 고통 중에 주님을 만나 살게 되었습니다. 주님을 진정으로 만난 것,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는 종종 경건한 자의 죽음이라는 말이 낯설고 너무 멀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사도바울은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이라 (빌 1:21) 말씀하였고 나는 날마다 죽노라라고 하였습니다 (고전 13:31). 결국 죽는 것은 구원의 잔을 든 이들의 삶의 일부입니다. 오늘 우리도 구원의 감격에서 그치지 않고 사랑하는 주님의 그 큰 은혜를 어떻게 갚을 수 있을까 말하며 나아가길 소원합니다. 멸망의 줄, 욕심의 줄, 미움의 줄에서 건져내어 주신 주님께 드려지는 향기로운 감사제로 우리의 삶을 올려드리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엡 5:2).
[기도제목]
- 주님, 우리가 무엇으로 주님의 은혜를 대신할 수 있을까요! 구원의 잔을 높이 들고 감사제로 나아가게 하소서. 우리의 욕심으로 인한 고통과 원망의 악취의 결박을 걷어내시고 주님 앞에 향기로운 감사제로 올려드리는 삶으로 인도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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