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시편 131편 [다윗의 시 곧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말씀묵상]
오늘 시편 131편은 열두번째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이며 다윗의 시입니다. 시인은 순례 여정 가운데 교만과 씨름하고 있습니다.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라고 시인은 고백합니다 (1절).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은 무엇일까요? 다윗의 일생을 생각하면 성전을 짓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주님께서 막으셨지만 그의 마음과 눈은 다윗에게 할 수 있다라고 계속 말하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때로는 할 수 있어도 하지 않는 것이 예배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서라고 하시면 서있는 것이 예배입니다. 오늘 시인에게 힘쓰지 않는 것이 오히려 순종이었던 것입니다.
두 번째로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은 바로 나로 말미암은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1절에는 중복되어 번역되지는 않았지만 '나로부터 (from me)'라는 단어가 숨어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이 보이지 않고 모든 것이 나로부터 말미암은 것처럼 마음과 눈이 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나로부터 말미암아 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큰 일과 감당할 수 없는 놀라운 일이 필요하며 그의 영혼은 쉼없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고해도 평안함이 없습니다. 교만함은 처음에는 죄라고 생각하기에는 미묘하고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스며듭니다. 어느 순간 급격히 퍼져 결국 하나님의 자리를 없애버리는 무시무시한 영혼의 병이며 큰 죄입니다.
2절에 젖 뗀 아이에 대한 언급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교만한 마음은 마치 젖 떼기 전 아이가 엄마에게 계속 젖을 찾아 보채는 것과 같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것에만 집중되어 있으며 불만족한 상태입니다. 나의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위해서만 주님이 필요한 수준입니다. 하지만 이제 시인은 마음의 교만함과 눈의 오만함을 버리고 주님께서 시키시지도 않은 일에 힘쓰지 않기로 마음을 정하였을 때, 마치 젖 뗀 아이가 그의 먹고자하는 욕구와 상관없이 엄마의 품에서 평안한 것처럼 주님의 품에 거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내가 자랑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내가 오늘 이 자리에 서 있게 하신 분이 주님이시며 우리가 계획하지만 그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이 바로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나로 말미암았다고 자랑할 수 없습니다. 이제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강하신 주님 앞에 서 있는 우리의 자랑은 우리의 약함일 것입니다 (고후 11:30). 주님께서 보여주시는만큼 보며 주님께서 가라고 하신 만큼 걸어가며 겸손과 순종의 제사를 통해 강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더욱더 명확히 경험하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기도제목]
- 주님께서 날마다 우리에게 말씀하신 만큼만 걸어가게 하소서. 앞서거나 뒤쳐지지 않게 하시며 우리 앞서 가시는 대장되신 예수님만 바라보며 주님과 발맞추어 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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