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시편 120편
[말씀묵상]
오늘 120편부터 134편까지 15편의 시편은 모두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고 제목이 되어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오늘 120편에서는 성전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기 때문에 왜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일까라고 의아해할 수 있습니다. '성전에 올라가는'이라고 하는 단어는 엄밀히 '올라간다'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간다고 할 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올라간다고 종종 말하였습니다. 종종 올라감이란 단어는 하나님의 도성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전으로 나아감을 의미하였습니다. 결국 좁은 의미에서 외국의 포로에서 예루살렘으로 귀향하거나 절기 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순례자를 의미하지만 결국 주님의 도성으로, 주님의 임재로 들어가는 모든 성도들이 부를 시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시인은 고난 중에 여호와께서 부르짖는 가운데 만난 하나님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1절). 오늘 시인이 하나님을 그토록 부르짖게 만든 사건은 악인들의 거짓 증언들 때문이었습니다 (2절). 시인은 그럼에도 그들과 화평을 시도하였지만 그들은 전쟁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6-7절). 시인을 괴롭게 하는 이들은 누구인가요? 시인은 자신이 지금 메섹에 머물며 게달의 장막에 거하는 것이 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5절). 메섹과 게달은 야만인으로 간주된 민족들이며, 화평을 미워하는 이들의 대명사로 오늘 시편에 등장하였습니다. 사실 두 민족은 서로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시인이 이 둘 민족들의 장막에 거하면서 그들의 공격을 받고 있다기 보다는 시인을 죽이려 달려드는 이들은 메섹과 게달 민족이 아니라 그들과 다를 바 없는 주변의 악인들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오늘 시편의 시인이 서 있는 곳이 물리적으로 바로 예루살렘 한복판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서 있는 곳은 메섹과 게달의 장막으로 변했고 그 싸움은 길고 치열하였다고 시인은 말합니다 (6-7절). 큰 고통 가운데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에 주께서 시인에게 주신 확신은 그들의 속이는 혀가 받을 최후는 장사의 화살과 로뎀나무처럼 잘 타는 숯불이라는 것입니다 (4절). 시인이 서 있는 곳은 메섹과 게달의 장막 같았지만 주님께서 부르짖을 때 그의 마음은 주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으로 올라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시편에서 메섹과 게달은 거짓과 싸움이 난무하는 곳으로 우리 성도들이 빠져나와야 할 곳을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또한 화평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곳으로 우리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슬픔과 고통의 순간이며 우리가 한계가 드러나는 곳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메섹과 게달의 장막에 고집스럽게 오래 거주하여 피곤함으로 주님께 올라가는 영역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언제가 장사의 화살과 로뎀나무 숯불로 그 모든 상황을 심판하실 것을 믿으며 그것들을 내려놓고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도 주님의 전으로 올라가는 순례자들처럼 주님의 임재로 들어가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기도제목]
- 주님, 우리가 메섹에 머무르며 게달의 장막에 오래 거주하였습니다. 저희가 노력해도 잘 안 되었습니다. 우리의 생명이신 주님, 모든 상황을 주관하시는 주님께 내려놓고자 주님의 임재로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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