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시편 126편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말씀묵상]
오늘 시편 126편은 일곱번째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입니다. 오늘 시편을 크게 바빌론에서의 긴 포로기를 마치고 귀환하여 어려움 속에도 성전을 개건하는 이가 노래하는 시편으로 보기도 하고, 바빌론 포로로 있는 이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돌려보내주시기를 구하는 시편으로 보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오늘 시편의 1절을 보면 이미 포로기가 끝난 것처럼 보이고 4절을 보면 포로기 중에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1절과 4절에 모두 '포로를 돌려보내다'라는 표현이 있는데 모두 '회복하다'라고도 번역이 가능합니다. 4절에 '우리의 포로를 돌려보내소서' 대신에 '우리를 다시 회복하소서'라고 이해하면 포로기 후 귀환 자의 상황으로 더 맞아보입니다.
오늘 시편은 포로기 중에 있는 시인의 상황과도 잘 맞는데, 그 이유는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개역개정성경에는 2절 말씀이 1절에 이어 자연스럽게 이미 일어난 것처럼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송이 가득찼었도다"라고 되어있는데 사실 '가득차게 될 것이다'로도 번역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의아할 수 있습니다. 이미 그렇게 되었다는 것인지 아닌지가 혼재된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1절의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에'를 '시온을 회복하실 때에'라고 읽고 2절부터 3절의 내용을 앞으로 있을 회복을 마치 과거의 일처럼 시인이 보며 포로기를 속히 끝내실 것을 구하고 있는 것으로 묵상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있을 내용을 과거처럼 본다는 것이 생소할 수 있지만 개역개정 성경의 번역자는 2절을 그렇게 이해하였습니다. 즉 정확히 말하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완료) 이미 일어난 일처럼 (완료) 표현한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아마도 그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보시는 것이 우리의 짧고 좁은 사고체계 위에 계시기 때문일 것입니다.
성도들의 순례 여정도 오늘 시편처럼 이런 이해하기 힘든 면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의 구원은 이미 이루어진 것인가요 아니면 두려운 마음으로 이루어가고 있는 것인가요? 주님의 말씀은 그 둘을 다 언급하면서도 어떻게 그 둘이 양립할 수 있는지 우리에게 설명해주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죄의 권세에 포로된 우리를 속량해주셔서 '이미' 자유인이 되게 하셨지만 어려운 상황에 의해 포로같은 삶을 살아갈 때 우리의 포로를 남방시내들 같이 돌려보내소서라며 '아직'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구원의 큰 기쁨을 이미 맛보았지만 우리는 지금 믿음의 순례여정 가운데 울며 씨 뿌리는 자로 부르심을 받았고 기쁨으로 단을 거둘 것을 소망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기쁨의 단을 가지고 돌아올 것을 노래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아직 일어나지 않았지만 믿음으로 이미 일어난 일처럼 노래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오늘도 울며 씨 뿌리는 자로 어려운 시기를 지날 때에 기쁨으로 단을 거둘 것을 믿음으로 노래하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기도제목]
- 주여, 속히 회복하소서 포로된 자를 돌려보내소서. 전염병에 포로된 이 땅을 구원하시고 주께로 돌이키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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